[기고]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이사장 조성일

▲ 조성일 공주참여자치연대 이사장.ⓒ
우리 사회는 왜 사회적으로 사안이 좀 크다 싶은 문제 앞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념으로 나뉘어져 집단적으로 인지오류 상황에 빠질까. 공주보 문제만해도 그렇다.

금강환경유역청에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몇 차에 걸쳐 공주보 처리방안에 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그런 어느 날 느닷없이 ‘공주보 철거반대’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물론 환경부의 평가보고서가 발표되기 전이었고 내건 이는 정진석 국회의원이었다.

신호였을까? 아무리 잘 훈련된 군대라 할지라도 그렇게 일사분란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다음 날부터 하루 이틀 사이에 수십 개의 단체가 공주 16개 읍면동 요소요소에 ‘철거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하다못해 시의 공적기구인 이・통장단도 내걸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 순간에 논의구조는 깨졌고 급기야 가두방송차량까지 거리로 나왔다.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섬뜩했고 예비검색이니 서북청년단이니 하는 단어가 스쳐갔으니 나만 그랬을까?

강과 물과 사람이라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지역환경적인 문제가 현수막 하나로 삽시간에 정치의제로 변해버렸다. 하기야 휘발성 강한 4대강 문제라 시끄러울 줄 짐작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해방공간의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큰 깃발 아래 모여 있는 것이 신변에 안전하다는 집단 무의식이 형성되고 세습된 탓인지 유독 정치적 영역에서 집단 인지적 오류가 발생하는데 바로 신념화 때문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은 곧잘 이 신념보존현상이라고 하는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곤 한다. 그렇게 결집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가짜라고 버리는 확증편향에 빠진다. 종내는 아무리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연구된 정보를 제공하고 합리적 방안을 제시해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바로 몰입상승이다. 현재 공주보를 놓고 벌어지는 상황이 딱 그러하다.

환경부에서 주민들에게, 공주보를 개방해서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하는데 공주보가 우성뜰에 어떻게 농업용수로 기능하는지, 또 수문개방 이후 지하수가 안 나온다고 하는데 어디가 그러한지 같이 관정도 파보고 여러 가지 검증을 해보자고 아무리 제안을 해도 막무가내다. 그리고 만일 문제가 있다면 대책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데도 그러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작 김정섭 공주시장은 문제해결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노력커녕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민주당 지도부와 정부에 공주보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하니 아직 사실검증도 끝나지 않은 지금 시장이 그럴 때인가? 부화뇌동이다.

일전에 시장이 몇몇 지지자들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공주보와 관련한 이야기 중에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공주시민의 시장이지 어느 편의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겠습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공주보를 그냥 두고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중립인가? 그리고 누가 편을 들어 달라 했는가? 단지 ‘공주보진실대책위원회’에서 촉구하는 것은 행정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집행하라는 것이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쫓아가는 것과 민의를 존중하는 것은 결이 완전히 다른 얘기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올바른 데이터에 근거해서 현장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시장이 “나는 중립을 지키겠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그런 기계적 중립과 형식논리는 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장을 뽑지 않았다. 김정섭 시장이 시장이 되고자 했을 때는 꿈이 있고 지향하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 꿈은 혼자 이룰 수 없고 그 가치는 혼자 지켜갈 수 없어 꿈과 가치를 같이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았을 것이고 그 곳이 정당이다. 시민들은 정당과 정당에서 추천한 사람을 보고 자기의 가치실현을 대리할 대표를 뽑았다. 그것이 대의제이고 정당민주주의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선거를 통해 선출된 시장이라면 중요한 사안마다 자기의 가치관 혹은 견해를 당당히 밝히고 투명하게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시민들이 위임한 공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고 권력을 위임한 시민에 대한 도리이다.

공주보는 (구)공주의료원과는 사안이 다르고 사안이 다르니 문제해결 방식 또한 확연히 다르다. 의료원은 그야말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각기 다른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는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민의를 수렴하는 조정자 역할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공주보는 철거반대를 하는 그 논거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고의적 왜곡은 없는지 꼼꼼히 분석하고 검증해야 하는 사실확인의 문제이다. 즉 인문이 아닌 실증과학의 영역이다. 현 상황이 왜곡된 정보에 의한 혼란이라면 이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이며 더군다나 왜곡된 정보에 의해 이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면 자연생태 훼손 및 경제적 손실 등 그 후과는 실로 크다.

사장이 적극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기억할 때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기억하지 않는다. 소신이 있었는지 그 소신을 어떻게 지켜나갔는지를 기억하고 평가한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잉에서 벗어나려면 공주보와 같은 경우 이념의 옷을 벗기고 오직 행정의 틀 안에서 단호하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공주시장 앞에 놓여있는 공주보는 무거운 짐이자 다시 없이 좋은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공주보를 철거하라고 선언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편을 들으라는 더더욱 아니다. 한 점 의구심 없이 사실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파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